기독교적 바리새주의

11
Nov

우리는 자신의 죄악 됨을 겸손히 인정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두 가지의 서로 반대되는 태도 가운데 하나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 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스스로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죄 책감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정도 차이는 있지만, 자기 만족적인 태 도를 지니는 것입니다(38-9p).

  • 기독교적 바리새주의

자기 만족적인 태도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자신이 올바른 교리를 믿고 있고, 올바른 기독교 서적을 읽으며,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올바른 훈련들을 행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거나, 혹은 어떤 기독교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교회의 자리만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믿 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보다 추악한 형태의 죄를 범하지 않으 므로 자신의 신앙 생활에 대해 꽤 잘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느끼게 되면, 누가복 음 18:9-14에 나오는 그 바리새인처럼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39p). 그는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는 자기 의를 의지하고 있었으며, 종교적 교만과 자기 만족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 인 예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바리새인이 종교적 교만에 푹 빠져 있다는 데 대해 동의하나, 그 비유가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세 련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41p)

  • 세련된 죄

이러한 “세련된 죄”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 른 사람을 은근히 비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쉽게 용납될 만한 죄인지라 우리는 그것 이 뚜렷이 드러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합니다. 마태복음 7장3절에서 예수님께서 비 판하는 태도에 대해 경고하신 것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 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판단하는 태도는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죄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죄로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42p)판단하는 말과 유사한 것으로는 ‘한담’이 있습니다(43p). 이것은 다른 사람의 죄나 불행에 대한 얘기를 계속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도둑질이나 간음을 금하신 것은 절대적인 명령임을 알고 있습니다. 말을 조심하라는 명령도 동일하게 절대적인 명령입니다.우리는 때로 한담을 하고 비판도 합니다. 그러 면서도 자신이 한담을 하는 사람이나 비판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성경은 어 떠한 한담이나 비판도, 혹은 어떠한 형태의 더러운 말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는 말 이 사실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귀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말은 어떤 것이라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사자 앞에서 하는 비판이라도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만 해야합니다. 결 코 조급함이나 짜증에서 나온 것이거나, 혹은 그 사람을 내리깔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오 직 사랑의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하는 정직한 비판만이 당사자를 세워 줄 수 있습니다(44p).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우리의 혀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태복음 12:3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혀를 제어하는 것만 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44p).

보다흔한 ‘세련된 죄’로는 대인 관계에서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원망, 쓴 부리, 용서하지 않는 태도,짜증, 조급함 등이 포함됩니다. 대인 관계 상의 죄를 다루는 가운데 바울이 “하나님 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에베소서4:30)라는 경고를 했다는 사실은 교훈하는 바가 큽니다. 바울은 이러한 경고를 성적인 부정을 다루면서 혹은 거짓말이나 도둑질에 대해 다루면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별로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범하는 죄를 다루 면서 그러한 경고를 했습니다.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적인 부정이나 부정직에 대 해 근심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세련된”죄에 대해서도 근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련된죄와관련된문제는,우리가죄의전체개념에대해너무편한태도를취하게되었다는것 입니다.죄를너무자주범하다보니우리는그죄가아주통제할수없는정도에이르거나창피 스러운것이아니라면그죄와함께사는법을배웁니다.우리는하나님께서얼마나죄를심각하 게 다루시는지를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아직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45)

  • 죄의 심각성

죄의심각성을깨닫는데도움을준성경구절세개가있습니다.

레위기 16:21(이스라엘 자손이 저지른 온갖 악행과 온갖 반역 행위와 온갖 죄를 다 자백하고 나서): 보통 ‘죄’로 번역되는 히브리어는 권위에 대한 반역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는 우리의 죄를, 그것이 세련된 것이든 조잡하고 창피스러운 것이든, 피조물들에 대한 그분의 절대주권적인 통치에 반역한 것으로 여기십니다(46).

사무엘하 12:9-12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경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경 멸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46).

그리고 열왕기상 13:21 (당신은 주님의 말씀을 어기고, 당신의 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 하신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공공연히 반대하다’입니다. 이 말은 불순종의 심각성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46-7).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그 런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특히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반대했다는 그 선지자가 그리 창피스러운 죄를 범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단순한 불순종 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대로 여기셨습니다(47).

우리는 단순한 불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죄의 심각성은 그 결과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그 명령을 주신 분의 권위에 의해 결정됩니다.그러므로 이 세 단어, 즉 반 역, 업신여김, 그리고 반대는 죄의 동의어이며, 우리 죄의, 심지어 소위 세련된 죄의 심각성을 파 악하는데 도움이 됩니다(47).

우리 마음의 죄악성을 계속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 이기적 야망, 지위나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사랑, 독립적인 기질, 우리의 목적을 위해 사건이나 사람들을 교묘히 속이 는 경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영원한 혹은 일시적인 행복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주의라는 암적인 죄도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마음속의 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죄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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